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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축제

파키스탄 신드족의 수피 음악 축제, 랄 샤바즈 칼란다르(Lal Shahbaz Qalandar) 제례

1. 신비로운 성인, 랄 샤바즈 칼란다르의 유산

파키스탄 신드(Sindh) 지역의 세원(Sehwan)에는 수피 성인 랄 샤바즈 칼란다르(Lal Shahbaz Qalandar)의 무덤이 위치해 있으며,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그의 제례(우르스, Urs)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다. 그는 13세기 페르시아 출신의 수피 성인으로, 이슬람 신비주의(Sufism)와 인류애를 실천했던 인물이다. 본명은 우스만 마르반디(Usman Marwandi)였지만, 붉은 옷을 즐겨 입어 ‘붉은 매(Lal Shahbaz)’라는 별명을 얻었다.

랄 샤바즈 칼란다르는 엄격한 율법보다 내면의 수양과 신과의 직접적인 교감을 강조했으며, 이 때문에 당시 주류 이슬람 학자들과 대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종교와 계층을 초월한 사랑과 평등의 가르침을 전파했으며, 특히 신드족과 펀자브 지역에서 절대적인 존경을 받게 되었다. 현재 그의 묘지는 신드 지역에서 가장 신성한 성지 중 하나로 여겨지며, 매년 그의 제례 기간 동안 열리는 축제는 단순한 종교 행사 이상으로 지역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파키스탄 신드족의 수피 음악 축제, 랄 샤바즈 칼란다르(Lal Shahbaz Qalandar) 제례

2. 랄 샤바즈 칼란다르 제례: 수피 음악과 황홀경의 밤

랄 샤바즈 칼란다르 제례는 수피 음악과 춤, 그리고 신비주의적 의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 축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다마(Dhamal)"라는 황홀경에 빠진 수피춤이다. 다마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수피들이 수행하는 "즈크르(Zikr, 신의 이름을 반복하는 의식)"와 유사한 형태로, 북을 치며 몸을 흔드는 격렬한 춤이다. 참가자들은 강렬한 리듬에 맞추어 무아지(Muajiz, 신비 체험)를 경험하고, 신과의 일체감을 느낀다고 믿는다.

또한, 카왈리(Qawwali)라 불리는 전통 수피 음악 공연도 축제의 중요한 요소다. 카왈리는 무슬림 신비주의 시인들의 시를 멜로디와 함께 부르는 형식으로, 특히 아미르 쿠수로(Amir Khusro)와 불레 샤(Bulleh Shah)의 시가 자주 연주된다. 전통적으로 하르모늄(harmonium), 다프(Daf, 둥근 북), 그리고 탁탑(Tabla, 손으로 치는 타악기)을 사용하여 연주하며, 카왈리 가수들은 반복적인 선율과 즉흥적인 변주를 통해 참가자들을 황홀경으로 인도한다.

무덤 내부에서는 디르바르(Darbar)라 불리는 신성한 의식이 진행되며, 순례자들은 향을 피우고 꽃을 헌정하며 성인에게 기도를 바친다. 제례 기간 동안 무덤 주변에는 각종 시장이 열리고, 거리 곳곳에서 즉흥적인 음악 공연과 공동 식사가 이루어지는 등 신드 지역의 문화가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펼쳐진다.

 

3. 랄 샤바즈 칼란다르 제례와 종교적 논란

랄 샤바즈 칼란다르 제례는 수많은 신도들에게 영적 축제이지만, 이슬람 정통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되는 행사이기도 하다. 파키스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 이슬람 중 일부 보수적인 학파(특히 디오반디파 및 와하비파)는 수피즘을 "이슬람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요소"로 간주한다.

이들은 특히 성인의 무덤을 참배하는 것, 음악과 춤을 통한 신앙 표현, 그리고 남녀가 함께 의식에 참여하는 행위를 비이슬람적인 것으로 비판한다. 이러한 이유로, 랄 샤바즈 칼란다르 제례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로부터 공격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7년 2월 16일 발생한 폭탄 테러로, 이슬람국가(IS) 계열 조직이 랄 샤바즈 칼란다르의 묘지에서 벌어진 제례 중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최소 88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이 사건 이후에도 수피 성지와 축제는 테러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만, 신도들은 오히려 더욱 강한 신념으로 이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4. 랄 샤바즈 칼란다르 제례의 문화적 의미와 지속 가능성

랄 샤바즈 칼란다르 제례는 단순한 종교적 행사 그 이상으로, 신드족의 문화 정체성과 연결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파키스탄 내에서도 신드 지역은 펀자브 등 다른 지역과 달리 힌두교와 불교,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다문화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특징이 수피즘과 결합하여 독특한 종교적 전통을 형성했다.

특히 랄 샤바즈 칼란다르의 가르침은 힌두교의 바크티(Bhakti, 헌신) 전통과도 유사한 요소가 많으며, 실제로 많은 힌두교 신자들도 이 축제에 참여한다. 이는 인도-파키스탄 간의 긴장 속에서도 신드 지역에서는 여전히 다문화 공존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들어, 유네스코(UNESCO)와 파키스탄 문화부는 랄 샤바즈 칼란다르 제례를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국제 사회에서도 이 축제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파키스탄 내에서도 수피 문화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증가하면서, 테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 축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