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성한 유물과 왕권의 상징: 에사라 페라헤라의 기원
스리랑카에서 가장 성대한 불교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에사라 페라헤라(Esala Perahera)**는 신성한 불아(佛牙, Buddha’s Sacred Tooth Relic)를 기리는 의식으로, 매년 7월~8월 보름달이 뜨는 시기(에사라 월, Esala Month)에 캔디(Kandy)에서 거행된다. 불교 국가인 스리랑카에서 이 축제는 단순한 종교 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불아(佛牙)는 부처의 치아 유골로, 불교에서 가장 신성한 유물 중 하나로 간주된다. 전설에 따르면, 이 유물은 부처의 열반 후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전해졌으며, 이후 캔디(Kandy)의 불치사(Temple of the Tooth)에 봉안되었다. 고대부터 스리랑카의 왕들은 불아를 보유하는 것이 정통 왕권의 상징이라고 믿었고, 불아를 수호하는 것이 곧 불법(佛法)을 지키는 것과 동일시되었다.
에사라 페라헤라는 이 신성한 불아를 기리며, 동시에 국왕과 불교 승려들이 국가와 백성을 보호해 줄 것을 기원하는 축제로 발전했다. 이는 단순한 불교 행사라기보다는 왕권과 불교의 결합을 보여주는 정치적·종교적 의식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 전통은 유지되며, 매년 수십만 명의 불자와 관광객이 캔디로 모여 이 장대한 행렬을 목격한다.
2. 화려한 행렬과 퍼포먼스: 신성한 코끼리와 전통 예술
에사라 페라헤라의 가장 큰 특징은 불아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행렬이다. 이 행렬은 수백 명의 승려, 전통 복장을 입은 무용수, 음악 연주자, 그리고 신성한 코끼리들로 구성되며, 불치사(Temple of the Tooth)에서 출발해 캔디 시내를 돌며 진행된다.
이 행렬의 핵심은 불아를 모시는 ‘말리가와 투스커(Maligawa Tusker)’라 불리는 장엄한 코끼리다. 이 코끼리는 금빛 장식이 덮인 화려한 복장을 착용하며, 등에 불아를 모신 황금 용기(Reliquary Casket)를 싣고 행진한다. 불교에서 코끼리는 힘과 지혜를 상징하며, 특히 성스러운 행렬을 이끄는 말리가와 투스커는 불법(佛法)의 수호자로 여겨진다.
이 퍼레이드에는 캔디안 댄스(Kandyan Dance)라 불리는 전통 무용도 함께 펼쳐진다. 캔디안 댄스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드럼 비트에 맞춰 공중제비를 돌거나 불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전통 춤으로, 16세기 캔디 왕국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공연 예술이다.
이 밖에도 칼춤, 횃불 쇼, 북 연주, 채찍 소리 퍼포먼스 등 다채로운 전통 예술이 펼쳐지며, 행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종교적·문화적 축제의 장이 된다.
3. 신과 인간의 공존: 힌두교와의 융합
스리랑카는 불교 국가이지만, 에사라 페라헤라는 단순한 불교 축제라기보다는 힌두교와 불교의 융합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스리랑카는 역사적으로 인도와 밀접한 문화적 영향을 받아왔으며, 특히 캔디 지역에는 힌두교 신앙도 강하게 남아 있다.
에사라 페라헤라의 행렬에는 힌두교 신전에서 모셔진 신들의 가마도 함께 행진한다. 대표적으로 비슈누(Vishnu), 스칸다(Skanda), 나타라자(Nataraja), 그리고 가네샤(Ganesha) 등의 신들이 불아와 함께 행렬을 이루며, 불교와 힌두교의 공존을 상징한다. 이러한 전통은 스리랑카에서 불교 왕권이 강력해지면서도 힌두교 의례를 포용했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스리랑카의 불교 왕들은 불교 사원뿐만 아니라 힌두 사원도 보호하며, 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힌두 의례를 병행하기도 했다. 이는 힌두교와 불교가 갈등을 빚기보다는 서로 공존하며 발전한 독특한 문화적 유산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에사라 페라헤라는 스리랑카 불교도뿐만 아니라 힌두교 신자들에게도 중요한 종교 행사로 여겨지며, 스리랑카 내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하나가 되는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다.
4. 현대적 계승과 관광 자원화: 전통의 보존과 변화
에사라 페라헤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축제이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관광 산업과 결합하며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는 이 축제를 유네스코(UNESCO)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제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 에사라 페라헤라는 전 세계 불교도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축제로 자리 잡았으며, 매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이 캔디로 모여 이 장대한 행렬을 감상한다. 그러나 동시에, 관광객 유치를 위한 지나친 상업화가 전통적인 종교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사라 페라헤라는 스리랑카의 불교 정체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행사로서, 국가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현대적인 변화 속에서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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