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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축제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의 수확제, 봉부마라(Bon Om Touk)의 성스러운 물의식

1. 봉부마라(Bon Om Touk)의 기원과 크메르 제국의 농경 문화 

봉부마라(Bon Om Touk)는 캄보디아에서 매년 10월 또는 11월 보름달이 뜨는 날 열리는 전통적인 수확 축제로, ‘물 축제(Water Festival)’라고도 불린다. 이 축제는 단순한 국가적 행사에 그치지 않고, 크메르 제국 시기부터 전해 내려온 성스러운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본래 봉부마라는 메콩강과 톤레삽 호수(Tonlé Sap Lake)의 물의 흐름이 바뀌는 시기를 기념하는 행사로, 캄보디아의 농경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크메르 제국(802년~1431년)은 강과 호수를 중심으로 한 수리(水利) 농업이 발달한 국가였다. 이 시기의 수도인 앙코르(Angkor)는 광대한 관개 시스템을 구축하여 물을 효과적으로 활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왕조의 번영을 유지했다. 봉부마라는 단순한 수확 축제가 아니라, 신성한 물을 통해 왕조의 번영과 농업 생산력을 기원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크메르 제국의 왕들은 신성한 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물의 흐름을 제어하는 능력이 왕권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요소였다. 따라서 봉부마라는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적 행사로 발전하게 되었다.

 

2. 성스러운 물의식과 크메르 왕실의 역할 

봉부마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성스러운 물의식이다. 이 의식은 크메르 왕실이 주도하며, 강의 신과 불교·힌두교의 신들에게 풍년과 국가 안정을 기원하는 종교적 행사다. 크메르 제국은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하는 사회였으며, 물은 신성한 요소로 간주되었다. 특히, 인도의 갠지스강(Ganges River)처럼 메콩강과 톤레삽 호수는 신성한 강으로 여겨졌으며, 봉부마라에서의 물의식은 이 신성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의례였다.

왕실에서 주관하는 물의식에서는 ‘프레아 코 프레아 케이(Preah Ko Preah Keo)’라는 전통적인 의례가 진행되었다. 이는 힌두교의 신 비슈누(Vishnu)와 크메르 불교의 수호신들에게 물을 바치는 의식으로, 왕이 직접 강에 신성한 물을 뿌리며 국운을 기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사원에서는 ‘쑥 톤레삽(សឹកទន្លេសាប, Suk Tonle Sap)’이라 불리는 불교적 의식이 진행되었으며, 승려들은 축복의 의미로 신도들에게 정화수를 뿌리는 의례를 거행했다. 이는 물이 인간의 죄와 불운을 씻어내는 정화의 도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의식은 크메르 제국의 왕권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봉부마라 기간 동안 왕은 ‘데바라자(Devaraja, 신왕)’로서 하늘과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왕이 직접 물의 흐름을 축복하는 행위는 신성한 통치의 증거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이 축제는 단순한 전통 행사가 아니라, 왕의 신성성과 국가의 안정을 확인하는 중요한 정치적·종교적 의례로 기능했다.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의 수확제, 봉부마라(Bon Om Touk)의 성스러운 물의식

3. 전통 용선(龍船) 경주와 공동체 정신 

봉부마라에서 가장 화려한 행사 중 하나는 전통 용선(龍船, Dragon Boat) 경주다. 이 경주는 크메르 제국 시기부터 내려온 전통으로, 단순한 경기 이상의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크메르 제국은 강을 중심으로 한 교통과 군사 전략을 발전시켰으며, 수군(해상 전투 병력)이 강력한 전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봉부마라의 용선 경주는 전통적으로 크메르 전사들의 용맹함과 단결력을 기리는 의미를 가졌다.

용선 경주에 사용되는 배는 화려한 조각과 전통 문양으로 장식되며, 각 마을과 지역을 대표하는 팀이 참가하여 경쟁을 벌인다. 이 배들은 일반적으로 ‘프레아 타온(Preah Thong)’과 ‘네앙 네악(Neang Neak)’이라는 전설 속 인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며, 이는 크메르 문화의 창조 신화를 반영한다. 경주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강의 신에게 바치는 헌정의 의미를 지니며, 승리한 팀은 해당 지역에 한 해 동안의 풍요와 행운이 깃든다고 믿는다.

또한, 용선 경주는 공동체 정신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크메르 농경 사회에서 마을 주민들은 협력과 단합을 강조했으며, 봉부마라는 이러한 정신을 반영하는 축제였다. 오늘날에도 이 전통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으며, 봉부마라 기간 동안 캄보디아 전역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즐긴다.

 

4. 현대 봉부마라 축제와 문화적 보존 노력 

현대에 들어 봉부마라는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국가적 행사로 자리 잡았으며, 매년 프놈펜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성대하게 개최된다. 특히, 프놈펜에서는 왕궁 앞 톤레삽 강변에서 대규모 용선 경주가 열리며, 전국 각지에서 온 선수단이 참가한다. 또한, 축제 기간 동안 불꽃놀이, 전통 공연, 불교 의식 등이 함께 진행되며,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연중 행사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대 봉부마라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다소 변화한 부분도 존재한다. 과거에는 왕실이 주관하던 성스러운 물의식이 핵심이었지만, 현재는 축제의 오락적 요소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관광 산업이 발달하면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이벤트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부 전통 의례가 간소화되거나 생략되기도 한다.

이에 대응하여 캄보디아 정부와 문화 단체들은 봉부마라의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사찰에서는 여전히 불교 의식을 거행하며, 전통 용선 제작 기술을 전승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캄보디아 문화부는 봉부마라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크메르 전통문화의 보존과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봉부마라는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크메르 제국의 유산을 계승하는 중요한 문화 행사로 남아 있다. 오늘날에도 봉부마라는 캄보디아인들에게 신성한 물의 축복을 기원하는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크메르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