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교 국가 고려의 대표 축제, 팔관회의 기원과 의미
팔관회(八關會)는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국가적 불교 행사로, 국왕과 신하, 외국 사신이 모두 참석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팔관회의 유래는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수행자들에게 지키라고 가르친 여덟 가지 계율(八關齋戒)에서 비롯되었으며, 중국을 거쳐 고려로 전해졌다.
고려 태조 왕건(918~943)은 불교를 국교로 삼고 팔관회를 국가의 주요 행사로 정례화했다. 고려에서 팔관회는 단순한 종교 의식을 넘어 왕권 강화와 외교 행사로 발전했다. 행사는 매년 음력 11월 15일 개경(현 개성)과 서경(현 평양)에서 개최되었으며, 각 지역에서 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외국 사신들이 참석하는 국가적 축제였다.
팔관회의 주요 의식으로는 부처와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례, 외국 사신과 관리들의 예물 교환, 불교 법회, 군사 행진 등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행사는 고려 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주변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팔관회는 점차 쇠퇴하게 된다.
2. 고려와 조선에서 이어진 불교 등불 축제, 연등회
연등회(燃燈會)는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여 등을 밝히는 축제로, 고려 시대에는 팔관회와 함께 중요한 국가 행사였다. 연등회의 기원은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고려에서 국가적 행사로 정착되었다. 고려 태조는 불교를 국교로 삼으며 연등회를 매년 성대하게 개최했고, 이는 불교의 왕실 후원을 상징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연등회는 주로 음력 4월 8일(부처님오신날 전후)에 열렸으며, 개경과 서경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성대한 등불 행렬이 이어졌다. 행사 기간 동안 왕과 귀족, 일반 백성들이 함께 참여하여 등을 밝히고, 불교 의식을 거행했다. 연등회에서는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등을 만들었으며, 밤이 되면 수천 개의 등이 도시를 밝히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조선 시대 초기까지도 연등회는 계속되었으나, 조선이 성리학을 국교로 채택하면서 점차 축소되었다. 태종과 세종 대에 이르러서는 국가 공식 행사에서 제외되었으며, 이후 민간 행사로만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연등회는 다시 부활하여 현재의 '부처님오신날 연등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3. 조선에서의 팔관회와 연등회의 쇠퇴
조선 건국(1392년) 이후, 새로운 왕조는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면서 불교 중심의 국가 행사를 점차 폐지하기 시작했다. 고려 시대에는 왕권과 불교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나, 조선은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왕권을 확립하면서 불교 의례를 국가에서 배제했다.
1391년, 고려 말 정도전은 '불씨잡변'을 저술하여 불교의 폐단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조선 왕조는 억불정책을 시행하며, 국가 행사에서 불교 색채를 없애려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팔관회와 연등회는 점차 폐지되었고, 공식적인 국가 행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전통을 존중하여 즉위 초기까지는 팔관회를 열었지만, **태종 대에 이르러서는 왕실 차원의 팔관회가 중단**되었다. 이후 세종과 성종 대에는 불교 관련 행사가 더욱 축소되었고, 결국 팔관회는 조선 중기에 완전히 소멸되었다.
연등회 역시 1425년(세종 7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며, 이후 사찰에서만 제한적으로 개최되었다. 그러나 불교를 신앙하는 일반 백성들은 여전히 사찰에서 연등을 밝히는 민간 행사를 지속했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후기로 가면서 서민 중심의 불교 행사로 변모했다.
4. 현대에서의 팔관회와 연등회의 부활 노력
팔관회는 조선 시대 이후 완전히 소멸되었지만, 최근 전통 문화 복원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일부 지역에서 재현되고 있다. 특히 불교 단체와 역사 연구자들이 팔관회의 복원에 관심을 가지며 학술 연구와 축제 형식의 재현 행사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팔관회는 국가 중심의 행사였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재현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반면 연등회는 현대에서 부처님오신날 행사로 다시 자리 잡으며 활성화되었다. 특히 연등회는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매년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연등 축제가 열리며, 수만 개의 등이 밤을 밝히는 장관이 연출된다.
현대 연등회는 단순한 불교 행사가 아니라 전통 문화와 현대적 감각이 결합된 축제로 발전했다. 외국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행사와 퍼레이드가 열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관광 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결국, 고려와 조선에서 잊혀졌던 두 축제 중 팔관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연등회는 현대적으로 부활하여 과거의 전통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 행사로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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