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하르샨베 수리의 기원과 조로아스터교적 의미
**차하르샨베 수리(Chaharshanbe Suri)**는 이란에서 **노루즈(Nowruz, 페르시아 설날)**를 앞두고 열리는 불의 축제로, 그 기원은 **고대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에서 찾을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신성한 정화의 도구로 여기며, 신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와 악의 화신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간의 대립 속에서 불이 악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차하르샨베 수리는 **페르시아력(Persian calendar)**의 마지막 수요일 저녁에 열리며, ‘차하르샨베(수요일)’와 ‘수리(붉음, 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 축제는 악의 기운을 몰아내고 다가오는 새해를 깨끗한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한 의식으로 진행되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 기원전 550~330년) 시대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이 신전에서 신성한 불을 피우고, 백성들이 그 불을 중심으로 기도를 올리며 한 해의 악운을 태우는 의식을 거행했다. 이러한 문화적 유산은 현대에도 이어져, 차하르샨베 수리는 불과 빛을 통한 정화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2. 차하르샨베 수리의 전통적인 의식과 불의 역할
차하르샨베 수리의 가장 대표적인 의식은 **불넘기(Fire Jumping, 불을 뛰어넘는 의식)**이다. 이란 전역에서 사람들은 거리나 광장에 모여 나무와 건초를 태우며 작은 모닥불을 만든 후, 그 위를 뛰어넘는 전통을 따른다. 불을 뛰어넘으며 **"내 창백함을 가져가고, 너의 붉음을 내게 줘라!"(Zardi-ye man az to, sorkhi-ye to az man)**라는 주문을 외우는데, 이는 병과 불운을 불 속에 태워 없애고, 건강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축제 기간에는 불꽃놀이와 폭죽 터뜨리기가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이는 악귀를 쫓아내고 다가오는 새해를 밝히는 의미를 가지며, 사람들이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주술적인 상징으로 여겨지는 행위들이 함께 이루어졌는데, 젊은 여성들이 **길 모퉁이에서 지나가는 행인의 대화를 엿들으며 미래를 점치는 풍습(Fal-Gush)**이 그중 하나였다. 이는 조로아스터교뿐만 아니라 고대 페르시아 민속 신앙과도 연결된 요소로 해석될 수 있다.
3. 차하르샨베 수리의 현대적 변형과 사회적 의미
현대에 들어 차하르샨베 수리는 이란 사회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특히 이슬람 혁명(1979년) 이후, 이슬람 공화국 정부는 조로아스터교 기원을 가진 전통 축제들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며, 차하르샨베 수리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정부와 일부 보수적인 이슬람 학자들은 불을 사용하는 의식이 이슬람의 가르침과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장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인들은 차하르샨베 수리를 민족적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의 일부로 간주하며 여전히 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대적 변형 과정에서 축제는 일부 공공 안전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는 불꽃놀이와 폭죽 사용이 지나치게 과격해지면서 화재와 부상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란 정부는 최근 몇 년 동안 폭죽 사용 규제와 공공장소에서의 대형 화재 금지 조치를 강화했으며, 차하르샨베 수리를 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기념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겪으면서도, 차하르샨베 수리는 단순한 전통 행사가 아니라 이란인들에게 민족적 자부심과 결속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적 유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4. 차하르샨베 수리의 국제적 영향과 지속 가능성
차하르샨베 수리는 이란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지역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아제르바이잔,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쿠르디스탄 지역에서는 차하르샨베 수리와 유사한 불 축제가 열리며, 이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문화적 유산이 널리 퍼져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차하르샨베 수리는 이란 디아스포라(해외 거주 이란인)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등지의 이란 이민자 공동체에서는 매년 차하르샨베 수리를 기념하며, 이를 통해 고향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확산으로 인해, 차하르샨베 수리는 이제 이란 내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적 행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차하르샨베 수리는 유네스코(UNESCO)에서 지정한 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될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축제가 공식적으로 보호받고 전승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전통적인 의미는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방식으로 변형되고 확산되는 차하르샨베 수리는 앞으로도 이란 문화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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